먼지로 화(化)한 여인을 맞으며, 남자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듯 시선을 돌리다 이내 체념하고 떨구었다.


그녀는 없었다, 더는.


“실바로스.”


낮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떨어졌다. 반짝이는 빛이 기다렸다는 듯 그 앞으로 사르르 내려앉았다.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자는, 표백된 듯 하얀 머리카락에 빨간 눈을 가진 여자였다.


“왕비가 절명했다.”


“…….”


“그녀가 남은 수명으로 <a href="https://www.ponte16.kr" target="_blank" title="우리카지노">우리카지노</a> 신께 소원을 빌었다 들었다. 그게 어떤 소원인지 너는 알고 있겠지.”


“왕비께선…….”


흰 머리칼의 신녀가 왕을 올려다보았다.


“왕께서 계시지 않는 다음 생을 원하십니다.”


“대가는 내어놓겠다. 그러니 날 그녀 곁으로 보내다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신녀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분명 신께선 제게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을 주셨지요. 하나, 왕비님이 이전에 빈 소원을 뒤집기 위해선 그 이상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왕비님께서 내놓으신 건, 그 분이 살았어야 할 세월. 왕께선 저에게 그 이상의 수명을 주셔야 합니다.”


“상관없다.”


“만약 이대로 소원을 빈다면 왕께 남을 수명은…….”


“상관없다.”


왕이 듣지도 않고 말을 끊어냈다.


“어째서 지나간 일에 미래를 버리려 하십니까? 왕비께선 왕을 알아보시지 못할 것입니다. 전하 또한 스스로 다가가지 못함에 가슴을 치고 후회할 것입니다.”


“그 또한, 상관없다.”


담담한 목소리가 자욱한 빛 안개를 헤치고 울려 퍼졌다.


“단 한 번의 기회만 더 주어진다면.”


1. 수상한 하루 (부제: 나는 어떻게 해서 그 동물원에 가게 되었나)






띠리리링!


귓가를 울리는 요란한 모닝콜에 하은이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도로 눈을 감았다.


“아, 또 이상한 꿈…….”


하은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한 남자와 여자가 나오는 꿈을 계속 꾸어왔다.


여자는 언제나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고, 남자는 그녀를 보며 꼼짝 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끊임없이 사과만 되풀이했다.


까닭은 모르겠지만, 그 남자를 보면 어쩐지 아련한 그리움과 비슷한 감정이 피어오르곤 했다.


어차피 잠에서 깨면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는 남자를 상대로 왜 이런담.


하은은 코를 훌쩍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유난히 시리다.


여름이라도 비가 온 날 밤에 반팔 티셔츠로 맞서는 건 아무래도 바보 같은 짓이었나 보다.